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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Vision/이야기 Value

사회복지사에게 복지국가란

by 전재일 2019. 12. 3.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세밧사) 전국투어로 전남사회복지사협회의 초청으로 간 복지국가 강의에서 한 발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했습니다.

 

 

 

복지국가’ 이 말에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일까요?

 

최근에 가슴 아픈 뉴스들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복지관이 위치한 관악구에서는 올 해 8월, 북한이탈주민이 자녀와 함께 아사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참 안타깝고, 어떤 면에서는 화가 나는 뉴스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단순히 화만 내면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사회복지사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인가요?

 

좋은 일 하시네요.”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제가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끝. 그 다음으로 “어떤 일 하세요?” 라는 질문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질문을 했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자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자격증을 교부받은 사람을 가리킨다.’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틀린 말은 아니죠. 사회복지 전문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하고, 사회복지사자격증이 있어야겠죠. 그런데 사회복지사인 우리 모두는 이런 정의에 썩 만족스럽지 않을 겁니다. 뭔가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사회복지사’의 모습이나, 한국사회복지사 윤리강령에서 읽었던 ‘사회복지사’의 모습이 이 정의에서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복지사윤리강령 전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국사회복지사 윤리강령 전문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 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단어 하나하나씩 의미를 찾아본다면, 이 전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 얼마나 이 시대에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인본주의가 무엇인지, 평등주의가 무엇인지, 자유권, 생존권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 얼마나 공부가 더 필요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한국사회복지사 윤리강령 전문에 나와 있는 글로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면 얼마나 멋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이렇게 소개할 만큼의 자신은 없었습니다.

 

분명 사회복지사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여러분도 진짜 열심히 살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사회복지사로서, 특히 한 조직에 살아가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이 참 녹녹치 않습니다. 어떤 조직에 있느냐? 어떤 리더를 만났고, 어떤 동료와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모두의 첫 마음과 뜻이 같았더라도, 점차 사회복지사로서의 사명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가끔 누군가가 들어가 보라고 해서 ‘사회복지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읽게 되는데 글을 읽을 때 가슴이 탁 막힙니다. 참 기막히고 안타까운 사연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오는데,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처한, 사회복지조직의 모습이라는 게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런 사회복지사 동료들이 처한 상황에서, 사회복지사의 전문성,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조직에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숱한 질문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5~6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 5~6년의 시간이 사회복지사로서 윤리와 책무성, 사회복지사로서 비전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아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가진 문제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기도 하고, 좀 더 먼 미래를 보면서 위안을 삼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격언 중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이 있습니다. 저는 생각 자체를 좋아한다고 느끼는데, 성찰은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돌아보는데, 저의 마음, 진짜 속마음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진짜 할 수 없는 상황인지, 하기 싫은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사회복지사는 자아성찰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숱하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계실 텐데, 제가 사회복지사로서 던졌던 질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마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실 겁니다.

 

 

 

 

처음 사회복지사로서 일했던 서울의 B 복지관은 중산층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15년간 일을 했는데, 아동복지, 학교사회복지, 지역복지, 홍보, 자원봉사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일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질문을 많이 던진 게 ‘잘 하고 있나?’인데요, 일하면서 혼날 때, 지칠 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제 자신을 점검해보기도 하고, 동료들의 성장을 보면서도 나는 잘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특히 아동복지 담당자로서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아이들이나, 당시 어린이 자살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민 속에서 나온 사회복지사로서 저의 역할은 ‘의미있는 타자’가 되자는 거였습니다. 아이들의 인생 가운데 많아야 일주일에 한시간을 만나게 되는데, 제가 하는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언젠가 의미있게 다가오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회복지사로 역할을 한 것이다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하던 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저소득층은 엄청난 상대적 빈곤과 절대적 빈곤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빈곤에 대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게 되는 많은 분들이 거주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적정주거가 아닌 곳에서 엄청난 월세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셨는데, 저는 서울시, 보건복지부에 주거 정책 개선에 대한 정책 제안을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기상조라는 답변을 받았는데, 전월세 상한제 같은 제도와 비슷한 정책 제안이었습니다.

 

새로 개관하는 수원에 있는 복지관으로 이직을 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저의 일, 포지션이란 다짐이 있었습니다. 권한부여, 임파워먼트가 실현되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의의 구조를 바꾸는 일부터 했습니다. 보고가 아닌, 논의가 이루어지는 회의를 만들기 위해서, 직원들이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도록 회의자료를 없애고, 보고가 아닌 생각을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기관이 가지고 있는 성과를 달성하는 것에도 초점을 두지만, 한 명의 사회복지사-퍼스널 브랜드 사회복지사를 만들고 싶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에 있으면서, 서울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원도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규모면에서 서울이 가지고 있는 인적 인프라와는 달랐습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게 말랑책스란 책모임을 만들게 되는데, 모집을 시작한 지 1주일도 안되어 15명 정도가 참여를 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복지수정이란 복지국가를 위한 모임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수원에서 일하면서 사회복지사로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활동이 있는데, 그것은 공유 활동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복지관 개관을 한 기록도 매뉴얼화 해서 공유했습니다. 또 복지관의 연간 사업계획서와 평가서를 홈페이지 자료실에 게재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언가를 공유하는 일이 처음에는 머뭇거리게 되기도 하지만, 공유를 해야 가치가 커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면, 공유하는 자신도, 공유 받는 누군가에게도 큰 긍정적인 도움과 변화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자신에게만 의미 있었던 가치가 누군가에게도 의미 있는 가치로 커지게 됩니다.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가 어디에 써져 있는 단어일까요? 사회복지사 선서문에 있는 단어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전체사회와 함께 한다.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나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준수함으로써,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사로 헌신한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를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혹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이나 뇌과학자들은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화학적 작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들도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선서문에 자유의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유의지가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율성,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무언가를 할 때 훨씬 더 큰 성취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 저의 ‘의지’를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앞에서 성찰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과 연관이 되는데,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며 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복지국가’입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잘 아는가?’란 질문에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복지국가는 ‘내가 정말 복지를 알고 있는가?’란 질문에서 복지국가에 관심을 가지고 지향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 6시에 집을 나와서 지하철을 타는데, 깜깜한 그 시간에 플랫폼에 많은 사람들이 서있는 것을 보게 되고, 출근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정말 일찍 아침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매우 겸손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날 ‘저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일텐데’, ‘저 분들에게도 나처럼 소중한 가족들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 분들이 어느 날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갑자기 실직을 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들이 벌어지게 될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가끔 제가 갑자기 아프다면, 갑자기 실직을 한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란 생각을 하게 되면, 불안해집니다.

 

 

 

 

이런 불안들은 사람을 강하게도 하지만, 대부분은 약하게 합니다. 움츠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에 이런 불안이 없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 방법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스핑 엔더슨은 복지국가의 3가지 유형을 설명할 때, 탈상품화(decommodication)를 설명합니다. 탈상품화는 노동을 상품으로 팔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의 유지가 가능한 상황으로, 복지국가의 급여가 하나의 권리로서 지급되어 개인이 시장에의 의존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앞에서 이야기했던, 갑자기 아파서 실직을 하면 어떻게 될까? 직장 내 갑질을 무조건 참아야하는 현실에서의 탈피를 ‘탈상품화’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살아간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복지를 정말 잘 아는가?’ 나름 열심히 사회복지사로서 살아왔음에도 이 말에 확실하게 답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왜 그럴까요?

 

 

 

 

또 어느 날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나는 사람을 잘 아는가?

 

40대 중반에, 20년차 사회복지사로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서 느낀 건, ‘내가 잘 모르는 구나’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 있는 사회복지실천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을 때, ‘복지국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답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그림에 많은 책을 넣지는 못했지만, 제가 복지국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했을 때 처음 읽었던 책들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비로 한달 살아가는 체험 수기인 ‘대한민국 최저로 살아가기’와 복지국가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알 수 있었던 ‘복지국가의 철학’,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이란 책입니다.

 

인문학과 관련해서는 인사모라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회복지사 모임’에서 매월 1권씩의 책을 읽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부터, 고전, 그리고 인권을 다룬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노력이 ‘우리의 실천을 더 값지게 한다’였습니다.

 

 

 

 

저는 세밧사 후원회원으로만 있다가 2018년부터 세밧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밧사 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사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복지국가로의 꿈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실천을 하며 복지국가를 꿈꾸면서 ‘사람’을 더 알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과 맥락은 같습니다.

 

 

 

 

복지국가란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회복지실천현장에서 느끼는 그 모든 것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천에 복지국가로의 꿈이 더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또 저에게 복지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지금의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선배사회복지사들에게 고마움을 가집니다. 그 분들의 수고가 지금의 사회복지의 모습을 좋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배 사회복지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우리의 자녀, 후손들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사윤리강령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복지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윤리강령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한 사람, 개인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 지금, 우리가, 내가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