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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Hope

소유냐 삶이냐 - 에리히 프롬

by 전재일 2021. 3. 18.

소유론적 인간이냐? 존재론적 인간이냐?

단순하게 양비론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격언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이 문장을 내 삶의 중요한 철학, 가치로 여겨왔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깊은 의미를 되새긴다보다는 세상을 살아갈 때 생각 - 성찰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생각하는 것. 세상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떤 영향이 있을까? 나는? 나라면? 등등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합리화한다. 지금, 이렇게 글로 기록하는 것도 생각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존재를 느끼고, 표현한다.

'소유'는 전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싶어한다. 어릴 적에는 운동화,자전거,축구공 등을 소유하고 싶어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 집. 전자제품 등 어릴 적에 가지고 싶어했던 것 보다 가격이 높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중 어떤 것은 당장은 가질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라도 언젠가는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소유가 삶을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일지라도, 욕심 ~ 물욕, 소유욕이 지나치면 안되는 것을 안다. 최근에 뉴스를 통해서 듣게 되는 수많은 소식들이 소유에 대한 집착, 탐욕으로 발생한 사건들이다. LH 직원들의 일탈이나, 자녀의 대학진학이나 진로에 있어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의 모습, 그리고 부동산투기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인냥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리의 모습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반성할 내용이 많다.

2020년, 코로나19로 우리는 기존의 생활양식, 기조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소유함으로 파괴하고 유린한 결과를 처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수많은 석학과 사람들이 통찰을 쏟아냈다. 뉴노멀 , 회복, 지금처럼 살아가면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간의 소유욕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사람들은 소유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고, 분란을 일으키고, 어쩌면 이전보다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다. 2021년 대한민국의 뉴스를 보면 작년 코로나19로 반성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디로 갔나 싶다.

사실 나는 불안하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도 여러 불안을 느끼게 하지만, 내 자녀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많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더 가지기 위한 소유욕이 과해지면 언젠가는 모두가 모든 것을 잃게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게 뻔해보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권력을 가지고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서고 싶어서,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서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얻는 소유는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줄까? (지금 미얀마의 사태나 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내 부모님의 자녀가 되었고, 왜 내 아내의 남편이 되었고 내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내 동료들의 동료가 되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물음에 답한다면,

나는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동료로서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며, 내 존재가 내 스스로에게도 가치가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늘 부족함을 느끼고,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내 삶은 의미가 있음을 자답하면서 살아간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프롬의 책이 나에게 주는 지향점(존재)이다.